2009년 01월 30일
클루지 - 창조과학에 날리는 통쾌한 한방!

이 책은,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사람의 mind, 즉 정신에 대한 책이다. 그 정신을 이해하고, 어떻게 운용하여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 가 주제인 책이다. 따라서 진화론이나 창조과학 등은 이 책과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제목을 저렇게 달았느냐 하면,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 바로 뇌의 진화 부분이고, 이 '클루지'라는 개념은 창조과학에 통쾌한 로켓펀치를 날릴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신론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신론자(하지만 종교는 안 믿었고)였지만, 철저한 무신론자이신 아버지에게 꼴좋게 논파당한 다음부터는 무신론자가 됐다. 나는 '빅뱅의 원인은 알 수가 없고, 따라서 그 원인불명의 원인을 GOD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그것이 과거, 알수 없었던 것을 신의 뜻으로 돌렸던 무지의 소치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 그러고도 네가 과학도냐?' 는 말로 한방에 내 논거를 무너트리셨다. 결국, 자연을 탐구하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이상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치에 합당하다. 말마따나, 신을 증명할 Burden of Proof는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창조과학자들은 신의 존재여부를 증명하려고 별별 짓을 다 한다. 그 중 하나가 'DNA나 단백질 같은 복잡한 분자가 "저절로" 합성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학이나 물리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 주장을 우습게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DNA나 단백질은 그렇게 복잡하고 거대하기만 한 분자가 아니다. 그것들은 중합체인데, 즉 더 조그마한 블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일단 이 블록들이 합성되기만 하면, 이 블록들은 이어져 큰 분자를 이룬다.
이 주장이 논파당하자 그들이 기댄 것은, '인간처럼 완벽한 존재가 진화같은 어설픈 과정으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관념을 통쾌하게 비웃는다. 인간이 완벽하다고? 웃기지 마라! 는 거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필이면 인간의 시신경은 망막 쪽으로 뇌와 연결되어 있어서 맹점, 즉 상이 맺히지 않는 점이 존재하게 된다. 망막이 아니라 위나 앞으로만 신경이 뚫고 나왔어도 맹점 같은 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인간에 이런 오점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클루지>라는 말은 '있는 재료로 어떻게든 만들어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아폴로 13호의 이산화탄소 여과기 같은 것. 아폴로 13호의 이산화탄소 여과기가 고장났을 때, 대원들은 할 수 없이 우주선에 있던 박스테이프와 양말 한 짝 등을 이용해서 여과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게 클루지다. 진화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일어난다.
즉, 이전에 있던 재료(생물)을 이용해 좀 더 개량시킬 수는 있어도, 새로운 생물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단 말이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더 좋고 새로운 생물을 뚝딱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시신경은 망막을 뚫고 지나가지 않았을 거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허리에 부담을 듬뿍 주는 2족 직립보행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 전에 존재했던 4족보행을 '일으켜 세우는' 방식으로밖에 직립보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직립보행 동물을 처음부터 만든다면, 팔다리를 좀 더 만들어서 4족 직립보행이나 6족 직립보행을 하는 편이 손을 써서 도구를 사용하기도 편하고 허리에 무리도 훨씬 덜 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척추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2족보행이라는 게 정말 어쩔 수 없는 '클루지'적 선택이라는 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진화론이나 생물학을 공부했다면, 인간이 완벽하다는 주장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았을 거다 :(
그리고 인간이 정말 바이블에 나온 대로 신의 모방품이라면, 신이 이렇게 불완전하고 허접하고 '클루지'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데,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요런 '꼬라지(Korage)'로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나머지 부분은 인간의 뇌가 클루지라는 걸 이용해서 행복하게 살자, 뭐 이런 내용인데,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이건 책 리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창조과학 병맛' 이라는 얘기를 하고자 책을 빌려온 거니까 딱히 얘기하지는 않겠다.
궁금하면 빌려/사보시기를. 참, 2009년은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이다.
@ 개인적으로는 다윈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데 꽤나 실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뭐 별 수 있나.
# by | 2009/01/30 22:56 | 트랙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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