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5일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어라, 근데 난 왜 안 즐겁지?
이게 아마 정글고로 촉발된 찌질이 키배(...)에 대한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네요.
트랙백에 참고할 만한 글 두개를 넣어 놨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맨 위의 제목처럼 생각할 겁니다.(아마 대학생도)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배우고 때로 익히니까 즐겁지 않니?" 라고 물어봤다간, "아니오!" 라고 거의 모두가 대답하...는건 물론이거니와, 날아오는 물건들을 피하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그건 학생들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정말 즐겁습니다. 이건 경험자인 제가 보증합니다.
문제는 뭐냐,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고 때로 익혀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배운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겁니다. 자꾸 수학의 예를 들고 있어서 죄송하지만,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라는 게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복잡해지니까, 정적분을 계산하는 이론적인 배경이 되는 정리라고 해두죠. 사실 이 정리 자체를 써먹을 일은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별로 없고, 이 정리의 결과가 정적분을 아주 쉽게 계산하게 해 줍니다. 극한계산을 쉽게 해 주는 로피탈의 정리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정리들을 배운다는 건 이런 정리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여기서 어떤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가 어떤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지 배우는 겁니다.
그럼 이 정리들을 "익힌다"는 건 어떤 말일까요? 그건 이것들을 이용하는 문제들을 여러 번 반복해 풀어보고, 문제를 풀려면 이것들을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 체득한다는 겁니다. 초등학교때 보던 수학익힘책 있죠? 거기 보면 꼭 무슨 눈높이나 구몬 학습지마냥 문제만 잔뜩 있습니다. 이게 익히는 겁니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문제 푸는 방법을 익히는 거요. 익히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미적분이라는 학문, 아니 모든 학문은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함께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익히기만"해도 시험은 볼 수 있다는 거죠. 이 점에 착안해, 우리나라 교육은 "익히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배운"적이 없습니다. "익힐" 뿐이죠. 수능시험장 가서 시험 잘 보려고요. 저는 이걸 "공부"라고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냥 연습입니다. 이과생 중에 고등학교 때 미적분의 기본정리의 증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배운 사람 있습니까? 교과서에도 안 나옵니다! 문과생 중에 1차대전을 촉발시킨 세르비아의 암살테러 사건의 뒷얘기, 그 청년의 정체, 그 뒤에 어떤 단체가 있었고 그게 세르비아 독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세르비아가 1차대전 당시 어떤 역할이었는지 배운 사람이요? 내가 보기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공자는 "배우고, 때로 익히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배움은 항상 해야 하는 것이고, 익히는 건 때때로 하면 된다는 뜻이죠. 익히는 게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일단 배우는 게 중요하고 익히는 건 그 다음이라는 겁니다.
시험이 중요하다면, 물론 익히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벼락치기" 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초중고 12년 내내 학생들에게 벼락치기만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배우게는 하지 않고 익히게만 하니까!
그래놓고 "기회도 평등하고 노력을 평가하는 거니까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언제부터 공부가 그런 의미로 쓰였답니까. 누가 문제 푸는 연습을 잘 했는지 평가하는 게 공부의 목적이라구요? 그건 공부에서 "배움"이 제거된 반쪽짜리도 안 되는 공부입니다.
애들한테 공부시키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제발 좀 제대로 된 공부를 시킵시다. 배움과 익힘이 균형을 이룬 공부를요. 그럼 애들도 공부 잘 할 거고 공부 하지 말라고 해도 밤새서 공부하는 애들도 늘어날 겁니다. 좋은 대학 가려고? 아니오. 공부가 재미있어서!
# by | 2008/11/05 13:36 | 머릿속을 맴돌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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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잘못되었지요.
구구절절 닥치고(..) 당장 나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증명도 못하는 애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뭐 소위 공부 잘하시고 학벌이 화려하시다는 분들은 이런 것까지 완벽하게 하실지 모르겠으나, 소수만 제대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이 이미 교육의 기본 취지에서 어긋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걸 당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니 참으로 좀 짱인 듯 합니다.
p. s. 한문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냥 덧붙입니다만.
공자가 말한 習이라는 것은 실천(行)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실제로 공자의 가르침 대부분이 禮라는 실천적 학문인지라 배우는 것보다는 실천하는 것을 더욱 높은 단계에 두었습니다.
전 우리나라의 교육 체제는 감히 저 '익히기'도 어설프게 모방해보려고 했지만 그에도 못 미친다는 데 걸겠습니다. 공자는 배움이 있고 나서야 올바르게 행할 수 있다고 했지요.
習을 실천으로 본다면 그 習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 게 맞겠군요. 學은 말할 것도 없고...